헤이리예술마을 스토리

예술인의 꿈과 이상을 담아 설계한 헤이리예술마을에는

오랜 고민과 철학이 담긴 색다른 이야기가 담겨있답니다.

헤이리의 캐릭터 이해를 돕는 이야기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헤이리 노을동산 이야기

헤이리예술마을
2022-05-15
조회수 445

헤이리예술마을은 다섯 개의 야산을 끼고 있는 계곡 지형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중 가장 높은 산이 마을 뒷산인 노을동산입니다. 사실 노을동산의 높이는 해발 108m 정도밖에 안 되지만 고층빌딩이 없는 헤이리마을 내에서는 고개를 들면 높이 솟은 산봉우리처럼 노을동산이 든든하게 마을을 지켜주고 있답니다.

노을동산이라는 이름은 헤이리 회원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겠지만 언젠가부터 모두가 노을동산이라 부르게 되었죠. 그 이유는, 산 정상에서 보이는 노을 풍경이 기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노을동산은 헤이리마을의 가장 동쪽에 위치합니다. 산에 올라 마을쪽을 바라보면 서쪽 하늘로 넘어가는 노을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기 회원들이 산책로를 만들었고, 그렇게 사람들이 밟고 오른 길은 자연스럽게 등산로가 되어 산정상까지 연결되었습니다.


말이 등산로이지 사람들의 흔적이 남은 울퉁불퉁한 흙길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길을 올랐고, 정상에서 노을을 바라보았습니다. 초기 회원들의 애정이 담겨서일까요? 2004년 산 정상에서 음악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악기나 장비를 가지고 올라간 것도 대단하고, 거기에 올라가 함께 음악을 즐긴 사람들의 열정도 대단합니다. 2005년에는 DMZ 예술제의 일환으로 임옥상 작가가 산 정상에 작품을 남겼습니다.

임옥상 작가는 신대철 시인의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시를 철판에 새겨 나선형으로 배치하여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이념에 의해 희생된 이름모를 누군가를 위한 헌시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을, 철판에 새겨진 시는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북녘을 바라보며 평화를 염원합니다.


노을동산의 존재가 헤이리 외부로도 널리 알려진 것에는 2019년 완공된 무장애숲길의 덕이 큽니다. 산림청 지원으로 조성된 무장애숲길을 통해 휠체어나 유모차도 산정상까지 편하게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10~15분만 걸으면 금세 산 정상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누가 예술마을 아니랄까봐 짧은 등산 중 이런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어르신도, 아이들도, 편하게 오르며 주변을 돌아보는 재미가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정상에서 바람을 쐬는 최고의 산책 코스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며 산을 오르다보면 또 다른 "인공적인 무엇"을 숱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군사 참호입니다. 이곳이 지금이야 관광명소로 많은 분들이 드나들지만 엄연히 접경지대입니다. 죄다 군사지역이었죠. 노을동산은 특히 군사 참호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한때 총 든 군인이 경계하는 최전선에서, 지금 우리는 예술을 벗하며 자연 속을 산책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 평화의 흐름을 생각하며 등산하면 보다 뜻깊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헤이리예술마을 조성 초기 여러 난관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군부대의 반대였다고 합니다. 나름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나봐요. 거기에 민간인이 마을을 만들고 심지어 관광지처럼 만들겠다는데 군부대는 당연히 싫어했겠죠. 통일동산 지구에 속하여 개발이 허가된 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오늘날의 마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군부대에서 노을동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고 해요. 군부대는 철수하지만 개발행위를 제한하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산 전체가 온전히 개발되지 않고 주민의 쉼터가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장애숲길은 이렇게 완만한 경사로 중간중간에 벤치도 충분히 만들어두었습니다. 그늘막은 없지만 울창한 숲이 자연적으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간단한 도시락을 싸와서 가족 친지와 나눠먹으며 살짝 땀을 빼고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가기에 딱 좋은 코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와도 좋겠죠. (딱 하나 단점이라면, 등산로 구간에 화장실은 없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전망이 일품입니다. 멀리 물줄기는 한강과 임진강입니다. 두 강이 만나는 합수부까지 한 눈에 들어오고요. 2021년 중 안내판이 추가되어 여기서 보이는 풍경이 남한인지 북한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보시듯이, 남한(강화도)과 북한(황해북도)이 동시에 보입니다. 예전에는 설명이 없어서 어디가 어디인지 알기 어려웠다면, 이제는 어린 자녀들에게도 "저기가 북한이야"라며 확실히 알려줄 수 있게 되었죠.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 같은 전문 관광지는 아니지만 맨눈으로 북한을 볼 수 있는 곳으로서 그 가치는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는 파주시 도시숲길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무장애숲길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바로 계단길의 추가입니다. 앞서 노을동산을 이야기하면서, 초기 회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등산로가 생겼다고 말씀드렸죠. 바로 그 등산로를 정비하였습니다. 계단과 야자매트를 이용해 등산로를 제대로 만들었고, 이렇게 정비된 등산로는 기존의 무장애숲길과 교차합니다.

계단길이 무장애숲길과 만나는 지점의 사진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단으로 가로질러 오르다가 무장애숲길로 천천히 숨고르며 오르기도 하고, 올라갈 때는 무장애숲길을 이용하고 내려갈 때는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계단으로 올라가며 테스트해보니, 각도가 은근히 가파르기는 합니다. 조금 숨이 찹니다. 하지만 정상까지 7분 정도면 오를 수 있었습니다. 운동 삼아 오르는 분들은 운동효과를 더욱 극대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새로운 계단길이 생기며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무장애숲길에 자주 오르는 사람만 알고 있는 깨알 같은 작품이 사라졌어요.

앞서 소개해드린 임옥상 작가의 작품에서 나온 "남북"이라는 글자입니다. 철판에 전각으로 새긴 작품이니 철판에서 글자를 도려냈겠죠. 그 중 "남북"이라는 도려내진 글자를 무장애숲길 정상 부근의 침목에 붙여두었는데, 이 위로 계단길이 새로 만들어졌더군요. 이 글자가 어디로 옮겨졌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계단길 아래에 묻힌 것 같은 불안감이 있습니다.

(북한 땅이 보이는 산 정상에 "남북"을 새겨두어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느꼈기 때문에 필자는 무장애숲길에서 여기를 제일 좋아했더랬습니다.)

이렇듯 노을동산은 20년 전부터 헤이리예술마을과 함께 존재하고 함께 변화한 마을의 구성원입니다. 곳곳에 참호가 보이는 살벌한 모습은 접경지대 파주의 현실을 보여주고, 거기에 작품을 가져다놓고 예술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산로를 닦은 예술마을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며,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인프라는 관광명소로서 헤이리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정상에서 보이는 북한 땅은 헤이리가 늘 이야기한 주제인 '평화'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헤이리에 볼 것이 참 많습니다. 산 아래의 볼 것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광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눈을 들면 보이는 이 노을동산의 존재를 잊지 말고 잠시 올라보는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이 숲길에 헤이리의 정체성이 함축되어 있으니까요. 물론 건강에도 좋고요.


추신. 무장애숲길 조성 초기 외부에 널리 알려지게 만든 일등공신은 뜻밖에도 핑크뮬리였습니다. 파주시에서 산 정상 부근에 핑크뮬리 군락지를 만들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의아했습니다. 헤이리는 이 지역의 자생 식물 위주로 일부러 조경을 할 만큼 지역성을 강조하는 곳인데 유행을 쫓아 외래식물로 포토존을 만든 게 적절한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아 사진을 남기고 추억을 더하였으니 핑크뮬리는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불과 1년만에 이 지역의 자생식물(이라고 쓰고 잡초라고 읽습니다)은 핑크뮬리 군락지를 점령해버렸습니다. 이제 가을에 올라가도 핑크색 포토존은 없을 겁니다. 이 또한 노을동산이 헤이리의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글, 사진 : 헤이리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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