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예술마을 스토리

예술인의 꿈과 이상을 담아 설계한 헤이리예술마을에는

오랜 고민과 철학이 담긴 색다른 이야기가 담겨있답니다.

헤이리의 캐릭터 이해를 돕는 이야기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헤이리예술마을과 파주출판도시의 관계

헤이리예술마을
2022-05-05
조회수 836

헤이리예술마을과 파주출판도시는 "민간 주도로 만든 문화예술단지"가 약 10km 거리를 두고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입니다. 전국을 다 뒤져도 이런 사례가 존재하는 곳은 파주가 유일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궁금해집니다. 헤이리예술마을과 파주출판도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들에 의해 같은 취지를 가지고, 그러나 다른 용도와 방식으로 이상적인 단지를 조성하려 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주출판도시는 출판인이 주도하여 조합을 결성한 뒤 국가산업단지로 허가를 받아 조성하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조성을 추진하여 2002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국가산업단지이므로 국가의 참여도 있기는 하였으나 거의 대부분 민간에 의해 조성한 거대한 단지입니다.


이때 출판도시 출범에 앞장선 출판인들은 영국의 헤이온와이(Hay-on-Wye )라는 마을을 여행하던 중 헌책(고서)으로 가득한 마을 풍경에 매료되어 파주출판도시에 이러한 문화를 주입하려 하였으나 산업단지이기 때문에 허가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파추출판도시 배후에 가칭 서화촌이라는 이름의 마을을 조성하여 "새책은 출판도시에서, 헌책은 서화촌에서" 콘텐츠를 만들어갈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헌책을 주제로 하는 책마을의 조성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혔고, 결국 책을 포함한 모든 문화예술을 포괄하는 예술인마을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이 수정됩니다.


파주출판도시의 밑그림이 완성된 1990년대 후반부터 예술인마을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오늘날의 헤이리예술마을이 완성되었고, 2003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헤이리예술마을은 국가의 참여 없이 100% 민간 자본의 투자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지휘한 대표적인 인물이 열화당의 이기웅 대표와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입니다. 이들은 각각 출판도시문화재단 초대 이사장, 사단법인헤이리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당시만 해도 접경지대 허허벌판이었던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예술마을이 자리를 잡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파주출판도시가 최근 2단계 확장으로 영화,미디어 산업의 메카로 콘텐츠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듯이 헤이리예술마을도 기존 순수예술 위주에서 문화의 범주를 확장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끝이 어떠하든, 민간에 의해 변화하며 유지되는 약 10km 떨어진 근방의 두 문화단지가 파주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를 보여줄 것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주역이 헤이리예술마을의 조성을 이끌었기 때문에 헤이리 회원 중 출판사 또는 출판인의 비중이 꽤 높습니다. 다만, 출판사 소유 필지는 아직 미건축 나대지로 남아있는 경우가 더 많은데, 출판산업의 현실이 반영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마 헤이리예술마을 내에서 책과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시설은 북하우스(한길책박물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초대 이사장인 한길사 김언호 대표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주역인 이기웅 대표는 안중근기념영혼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시기가 겹쳐 아직 영혼도서관의 활동은 잠잠하지만 독특한 의미와 목적이 담긴 공간으로서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갈 콘텐츠가 기대됩니다.


여담이지만,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예술마을 모두 원래 조성하려 했던 부지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파주출판도시는 1기신도시 붐에 올라타 일산에 조성할뻔 했으나 갑작스러운 땅값 상승으로 서울에서 더 멀리 떨어진 파주 심학산 부근에 자리잡게 됩니다. 원래 출판도시가 들어설뻔했던 곳이 오늘날 고양종합터미널 부근이라고 들었습니다. 출판도시가 심학산자락에 터를 잡은 뒤 그 배후마을로 조성이 추진된 서화촌(헤이리)은 처음부터 통일동산 내에 자리를 잡았으나 원래 서화촌이 들어서기로 한 곳은 오늘날 CJ스튜디오센터가 있는 곳입니다. 현재의 헤이리마을 부지는 통일동산에서 민속촌 부지로 할당된 곳이었는데 IMF 직후 민속촌을 만들겠다는 곳이 없어서 헤이리예술마을이 여기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훨씬 입지조건이 좋은 곳에 넓은 땅을 가지게 되었고, 더 많은 예술인이 모일 수 있었으나, 그만큼 사업의 규모가 커져서 헤이리도 초기에 고생을 많이 하게 된 이유가 됩니다.


글,사진 : 헤이리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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