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2023년 2월) : 퍼니쳐 카페의 정석 | 컴프에비뉴 + 피이알 카페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쓰고, <오늘 같은 날 헤이리>를 공저하였다.)
당신이 앉은 그 자리
헤이리예술마을은 오래전부터 커피로 유명했다.
한간에는 ‘카페촌’이라는 비하도 있었지만,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만큼 헤이리의 카페가 경쟁력이 있다는 뜻.
고유의 문화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판을 깔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헤이리의 커피 문화는 매우 훌륭하다.
15만 평 넓은 마을인 걸 고려하더라도 헤이리예술마을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이 마을 안에 영업 중인 카페(베이커리 포함)의 수는 어림잡아 60곳 정도에 이른다. 그런데 특이한 건,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커피 문화를 자랑한다. 한 마을에 수십 곳이 경쟁하기에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대명제도 유효하다.
최근 카페 트렌드가 사진 찍기 좋은 초대형 카페로 이동하고 있고, 특히 수도권에서 비교적 외곽에 속하여 넓은 용지 확보가 쉬운 파주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헤이리예술마을은 20년 전 마을이 생긴 이래로 쭉 한결같은 경향을 고수한다. 의미 없는 대형화를 지양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문화예술을 공간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카페를 비문화시설로 규정하지만 헤이리예술마을에서만큼은 카페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시선부터 압도하는 초대형 카페는 아니더라도 짧게는 몇십 분, 길게는 몇 시간 머무르며 커피의 맛과 향에 빠져들기에 더할 나위 없는 수십 가지 선택지를 갖추어 놓았다.
고유의 문화를 품은 헤이리 카페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겠는데, 그중 하나가 이른바 ‘퍼니쳐 카페’, 다시 말해서 가구 쇼룸 카페이다. 당신이 앉은 그 자리가 곧 작품이고 제품이다. 손님이 이용하는 모든 테이블이나 의자를 직접 만든 제품으로 갖추어두어 자연스럽게 제품도 홍보하고 멋들어진 가구로 세련된 인테리어도 추구한다.
컴프에비뉴가 대표적이다. ‘학생용 책상’으로 매우 높은 인지도를 갖춘 컴프프로 가구 직영 베이커리 카페인데, 고풍스러운 디자인부터 모던한 디자인까지 다양한 제품군이 2층짜리 넓은 카페 홀을 가득 채운다. 어떤 구역은 비즈니스룸 같고, 어떤 구역은 스터디룸 같은데, 모든 자리를 이용해보며 가구도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카페 분위기도 그럴싸하다.
큰 서재에 가득 꽂힌 그림책, 만화책, 교양도서, 외국도서 등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푹신한 소파에 푹 파묻혀 하염없이 책 읽기에도 좋다. 음료 및 베이커리 메뉴는 최신 유행을 반영하며 시시각각 개편되는데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브런치 메뉴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스스로 ‘헤이리에서 가장 일찍 오픈하는 카페’로 소개할 정도로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부지런히 오픈해 아무 때나 찾아가도 문 닫을 염려가 없고(헤이리는 평일에 문을 닫거나 띄엄띄엄 영업하는 곳이 종종 있다), 매장이 넓어 혼잡한 주말에도 대체로 빈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좌석 간 간격이 넓어 다른 사람과의 간섭이 적다는 점도 좋다.
가구와 그림이 모두 인테리어가 된다는 점에서 착안했음인지, 작년부터 넓은 매장 곳곳에 중견작가 작품을 걸어두고 판매도 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도 헤이리예술마을의 색깔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컴프에비뉴와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퍼니쳐 카페로 최근에 오픈한 피이알(per) 카페도 소개한다. 원목 가구 위주로 직접 제작하는 가구회사에서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직접 만든 가구 제품이 카페를 가득 채우고, 손님은 자유롭게 카페를 이용하며 자연스럽게 가구를 체험하게 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흡사 방처럼 구획된 공간마다 다른 테마로 제품을 배치하고, 전등이나 거울 등 모든 인테리어를 포괄하는 ‘종합 세트’의 분위기 속에서 카페를 이용하게 된다. 각각의 구역은 연결되어 있으나 의외로 독립적이어서 심지어 각 구역마다 다른 음악을 틀어놓아도 서로 간섭이 적다. 마치 이런 분위기에는 이런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라는 듯 구성한 센스가 독특하다. 낡은 건물을 직접 보수하여 리모델링하였기 때문에 구석구석 정성이 느껴지는 것도 장점.
피이알 카페는 쇼룸의 성격이 더 강하여 카페는 주말에만 오픈하고, 평일은 쇼룸 본연의 용도 또는 원데이 클래스 등 특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 김포시에서 카페로 성공하고 헤이리로 진출한지라 카페 메뉴의 수준도 알차다. 디저트류의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매장 규모가 크지 않은 대신, 주문한 음료를 자리로 가져다주고, 손님이 직접 치우지 않아도 된다. 마치 자신들의 가구로 채워둔 공간을 즐기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듯하다.
컴프에비뉴와 피이알 카페 모두 자사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라는 목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가구를 제대로 사용해보려면 오랜 시간 앉아있어야 하니 오래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히 훌륭한 음료 퀄리티와 분위기가 갖추어져 있다. 대형과 소형, 연중무휴와 주말 영업, 넓은 홀과 방처럼 구분된 공간, 서로의 색깔의 180도 다른 두 카페를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서 이용해보자. 프랜차이즈를 지양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하도록 유도한 헤이리예술마을 고유의 철학이, 당신이 앉은 그 자리에서 발현되는 셈이니.
14호(2023년 2월) : 퍼니쳐 카페의 정석 | 컴프에비뉴 + 피이알 카페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쓰고, <오늘 같은 날 헤이리>를 공저하였다.)
당신이 앉은 그 자리
헤이리예술마을은 오래전부터 커피로 유명했다.
한간에는 ‘카페촌’이라는 비하도 있었지만,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만큼 헤이리의 카페가 경쟁력이 있다는 뜻.
고유의 문화를 스스로 찾아가도록 판을 깔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헤이리의 커피 문화는 매우 훌륭하다.
15만 평 넓은 마을인 걸 고려하더라도 헤이리예술마을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이 마을 안에 영업 중인 카페(베이커리 포함)의 수는 어림잡아 60곳 정도에 이른다. 그런데 특이한 건,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 모두 저마다의 개성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커피 문화를 자랑한다. 한 마을에 수십 곳이 경쟁하기에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대명제도 유효하다.
최근 카페 트렌드가 사진 찍기 좋은 초대형 카페로 이동하고 있고, 특히 수도권에서 비교적 외곽에 속하여 넓은 용지 확보가 쉬운 파주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헤이리예술마을은 20년 전 마을이 생긴 이래로 쭉 한결같은 경향을 고수한다. 의미 없는 대형화를 지양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문화예술을 공간에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카페를 비문화시설로 규정하지만 헤이리예술마을에서만큼은 카페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시선부터 압도하는 초대형 카페는 아니더라도 짧게는 몇십 분, 길게는 몇 시간 머무르며 커피의 맛과 향에 빠져들기에 더할 나위 없는 수십 가지 선택지를 갖추어 놓았다.
고유의 문화를 품은 헤이리 카페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겠는데, 그중 하나가 이른바 ‘퍼니쳐 카페’, 다시 말해서 가구 쇼룸 카페이다. 당신이 앉은 그 자리가 곧 작품이고 제품이다. 손님이 이용하는 모든 테이블이나 의자를 직접 만든 제품으로 갖추어두어 자연스럽게 제품도 홍보하고 멋들어진 가구로 세련된 인테리어도 추구한다.
컴프에비뉴가 대표적이다. ‘학생용 책상’으로 매우 높은 인지도를 갖춘 컴프프로 가구 직영 베이커리 카페인데, 고풍스러운 디자인부터 모던한 디자인까지 다양한 제품군이 2층짜리 넓은 카페 홀을 가득 채운다. 어떤 구역은 비즈니스룸 같고, 어떤 구역은 스터디룸 같은데, 모든 자리를 이용해보며 가구도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카페 분위기도 그럴싸하다.
큰 서재에 가득 꽂힌 그림책, 만화책, 교양도서, 외국도서 등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 푹신한 소파에 푹 파묻혀 하염없이 책 읽기에도 좋다. 음료 및 베이커리 메뉴는 최신 유행을 반영하며 시시각각 개편되는데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브런치 메뉴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스스로 ‘헤이리에서 가장 일찍 오픈하는 카페’로 소개할 정도로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부지런히 오픈해 아무 때나 찾아가도 문 닫을 염려가 없고(헤이리는 평일에 문을 닫거나 띄엄띄엄 영업하는 곳이 종종 있다), 매장이 넓어 혼잡한 주말에도 대체로 빈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좌석 간 간격이 넓어 다른 사람과의 간섭이 적다는 점도 좋다.
가구와 그림이 모두 인테리어가 된다는 점에서 착안했음인지, 작년부터 넓은 매장 곳곳에 중견작가 작품을 걸어두고 판매도 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도 헤이리예술마을의 색깔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컴프에비뉴와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퍼니쳐 카페로 최근에 오픈한 피이알(per) 카페도 소개한다. 원목 가구 위주로 직접 제작하는 가구회사에서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직접 만든 가구 제품이 카페를 가득 채우고, 손님은 자유롭게 카페를 이용하며 자연스럽게 가구를 체험하게 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흡사 방처럼 구획된 공간마다 다른 테마로 제품을 배치하고, 전등이나 거울 등 모든 인테리어를 포괄하는 ‘종합 세트’의 분위기 속에서 카페를 이용하게 된다. 각각의 구역은 연결되어 있으나 의외로 독립적이어서 심지어 각 구역마다 다른 음악을 틀어놓아도 서로 간섭이 적다. 마치 이런 분위기에는 이런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라는 듯 구성한 센스가 독특하다. 낡은 건물을 직접 보수하여 리모델링하였기 때문에 구석구석 정성이 느껴지는 것도 장점.
피이알 카페는 쇼룸의 성격이 더 강하여 카페는 주말에만 오픈하고, 평일은 쇼룸 본연의 용도 또는 원데이 클래스 등 특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 김포시에서 카페로 성공하고 헤이리로 진출한지라 카페 메뉴의 수준도 알차다. 디저트류의 가짓수가 많지는 않지만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매장 규모가 크지 않은 대신, 주문한 음료를 자리로 가져다주고, 손님이 직접 치우지 않아도 된다. 마치 자신들의 가구로 채워둔 공간을 즐기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듯하다.
컴프에비뉴와 피이알 카페 모두 자사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라는 목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가구를 제대로 사용해보려면 오랜 시간 앉아있어야 하니 오래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히 훌륭한 음료 퀄리티와 분위기가 갖추어져 있다. 대형과 소형, 연중무휴와 주말 영업, 넓은 홀과 방처럼 구분된 공간, 서로의 색깔의 180도 다른 두 카페를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서 이용해보자. 프랜차이즈를 지양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하도록 유도한 헤이리예술마을 고유의 철학이, 당신이 앉은 그 자리에서 발현되는 셈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