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헤이리뷰는 "헤이리의 리뷰"라는 뜻으로 매달 헤이리예술마을의 행사나 공간 등을 1~2곳씩 여행작가의 리뷰로 소개해드리는 코너입니다.

[15호] 무언가 만들고 싶을 때 (2023.03.)

헤이리예술마을
2023-03-31

15호(2023년 3월) : 도자기 체험과 캔들 체험 | 모리카페 + 캔들공방LUZ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쓰고, <오늘 같은 날 헤이리>를 공저하였다.)


무언가 만들고 싶을 때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예술은 보거나 듣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인식이 그러했다.

요즘에는 보통 사람도, 남녀노소 누구나 예술을 보고 듣고, 직접 만들기까지 한다.

인류의 유산으로 기억될 작품이 아니면 어떠랴. 내 머리로 상상하고 내 손으로 만드는 과정이 뜻깊지 아니한가.


집에서 잘 차려 먹다가도 가끔은 밖에 나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미 굳어버린 나의 두뇌로는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무한의 우주를 품고 있는 딸아이는, 늘 집에서 쓰고 그리고 오려 붙이고 색칠하며 자신만의 작품을 뚝딱 만들어낸다. 그러다가 가끔 외식하듯 바깥에서 좀 더 그럴싸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 창작욕이 꿈틀거릴 때가 온다. 이런 날은 집 밖으로 나가줘야 한다. 동네 한 바퀴 돌며 묻는다.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예술이 관람을 넘어 체험의 영역까지 도달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지금은 아이들이 예술작품을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고 체험하며 오감을 자극하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아마 이러한 트렌드의 가장 앞쪽에 헤이리예술마을이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방문객이, 특히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만들고 체험할 수많은 콘텐츠가 존재했으니까. 어쩌면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닿지 않는 이 변두리까지 많은 사람이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와 금세 인기명소가 된 것에는, 이처럼 선구적인 콘텐츠의 힘이 차지하는 지분이 꽤 높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외식(外食), 아니, 외작(外作)을 원하는 딸아이를 데리고 모리카페에 갔다. 모리카페는 도자기카페를 표방한다. 카페와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컵, 접시, 그릇 등 다양한 모양의 초벌 도자기 위에 붓으로 나만의 작품을 만든다. 종이와 질감이 다르고 평면과 곡면의 차이도 있어 마냥 쉽지 않은 듯 잔뜩 집중한다.


그렇게 아이의 세계가 펼쳐진 그림은 컵에, 접시에, 그릇에, 선명하게 박제되어 다시 아이의 일상에 들어온다. 재벌 과정이 필요하므로 그 자리에서 작품을 손에 들고 오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작품이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는 며칠간은 마치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설레는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예술 체험은 나날이 다양해진다. 그림을 그리거나, 도자기를 굽거나, 나무나 돌 등의 재료를 깎고 다듬어 작품을 만드는 게 보편화 되면서, 이제는 더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고, 기본적인 틀을 짜두어 안정적인 결과물이 만들어지도록 보조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새로운 걸 만들 기회를 주고 싶어 한 번은 캔들 체험을 시켜주었다. 캔들공방LUZ. 꽤 오랫동안 포셀린스토리라는 이름의 캔들체험 공방으로 헤이리마을에서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뒤 새 이름을 달고 헤이리 중심부로 자리를 옮겼다.


케이스에 다양한 파츠를 넣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꾸민 뒤 뜨거운 왁스를 붓고 다시 파츠를 넣어 전체적인 장식의 자리를 잡고 심지를 넣어 굳히면 하나의 근사한 아쿠아캔틀이 완성된다.


손보다 작은 캔들이지만, 그 작은 세상은 또 하나의 상상의 놀이터. 무슨 색을 넣을까, 어떤 모양을 넣을까, 좁은 틈에 배치를 어떻게 해야 예쁘게 나올까, 몇 번씩 장식을 고치다 멈칫하기를 반복하는 딸아이에게는 그 순간이 일생일대의 고민이었을지 모른다.


손끝으로 이리저리 고치고, 손이 안 닿는 곳은 집게로 고쳐가며, 지도 선생님의 도움도 받아가며 장식을 마치면, 1시간 정도의 기다림 뒤에 완성품을 손에 들고 나설 수 있다. 잠깐 산책하며 마을을 구경하다 보면, 또는 근처 광장에서 뛰어놀거나 갤러리를 구경하다 보면 1시간은 훌쩍 간다.


모리카페는 초벌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페인팅뿐 아니라 직접 포슬린 흙을 반죽하고 빚어 작품을 만드는 흙빚기 체험이나 물레 체험도 가능하다. 당신이 도자기와 관련되어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체험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캔들공방LUZ는 아쿠아캔들 외에 소이캔들, 플라워캔들 등 여러 종류의 체험이 가능하고,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 등 시즌에 맞춘 상품도 시의적절하게 갖추어 놓는다.


딸아이는 자신이 만든 컵에 이름까지 붙여주고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캔들에 차마 불을 붙여보지는 못하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놔두었다. 부모도 가늠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우주가 그 속에 꽃을 피웠을 것이다. 무언가 만들고 싶을 때 헤이리마을을 거닐어보라. 또 다른 무한한 우주의 씨앗이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손끝에서 꽃을 피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