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호(2022년 12월) : 한국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 정기전 ? and ! | 논밭갤러리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쓰고, <오늘 같은 날 헤이리>를 공저하였다.)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함
헤이리예술마을을 걷다 보면 꽤 오랫동안 시선을 강탈한 ‘무’가 있었다.
그곳은 예술공간이며 생태공간이자 교육공간이었고, 헤이리에서 가장 특이하고 생동감 넘치는 곳이었다.
그곳은 지금 원래의 위치를 벗어나 ‘시즌 2’를 시작했고, 그 정신을 함축한 전시를 열었다.
논밭예술학교. 이 이름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논밭과 예술은 무슨 관계인가? 이 학교는 농사를 가르치는가, 예술을 가르치는가? 지금 와서 제3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사실 그 구분은 무의미했다. 논밭예술학교는 그저 자연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무언가 ‘작당’하여 생태와 환경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종잡을 수 없는 프로젝트를 벌여온 곳이다. 그러면서 우리 먹거리를 이용한 배움의 장도 만들었다. 큰 질서는 있으나 일률적인 정의를 거부하는, 마치 자연과 같은 모습이 그 속에 있었다.
논밭예술학교에는 ‘논갤러리’와 ‘밭갤러리’라는 이름의 전시실이 있었고, 꾸준한 전시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어느샌가 논밭갤러리라고 합쳐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유감스럽게도 논밭예술학교의 자유로운 프로젝트에 마침표를 찍고, 많은 이들이 탄식을 내뱉을 즈음 도보 5분 거리에 새로운 논밭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논밭예술학교에서 전시에 관여한 그 인력이 그 정신을 그대로 살려 새로운 갤러리를 열었다. 시선을 강탈한 ‘무’는 사라졌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원래의 정신이 살아있는데.
논밭갤러리 재개관 이후 지금까지 “판 아트 페스티벌”의 일환인 <헤이리와 이웃작가전>을 제외하면 두 번의 공식 전시가 있었다. 매번 논밭갤러리의 전시는 평범하지 않았다. 요란한 홍보도 없었다. 그래서 논밭갤러리에 들어서면 일종의 ‘섬’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로지 작품만 날 것 그대로 바라보며 망망대해에 서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 논밭갤러리의 12월, 몹시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새로운 전시가 문을 열었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철학으로 똘똘 뭉친 한국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이하 ‘민미협’) 정기전 <조국의 산하전 : ? and ! >. 총 34인의 민미협 작가가 작금의 현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자신의 예술세계로 표현하는 흥미로운 시간이다.
작금의 현실이라니, 솔직히 낭만적이거나 유쾌하지 못하다. 자연은 파괴되고, 1년 내내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으며, 팬데믹으로 인한 상처에 고통받고, 얼마 전에는 가슴 아픈 참사도 겪었다. 슬프고 우울한 소식이 연일 들려오는 지금, 민미협 예술인들이 가진 질문(?)은 무엇이며, 그것에 대한 예술적인 해답(!)은 무엇일까?
넓은 전시 공간을 가득 메운 민미협 작가의 다채로운 작품은 하나같이 재기발랄하고 때로는 직설적이다. 해학이 넘치고 통찰이 돋보인다. 가령, 이철재 작가는 팬데믹 와중에 서민의 숨통을 열어준 재난지원금 카드를 모아 미륵보살을 실크스크린으로 프린트하여 <2020, 이방의 갈릴리인이여>를 만들었다.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며 조류 75% 멸종위기를 경고하는 주재환 작가의 <멸종위기>, 기후 변화로 지금은 자취를 감춘 ‘고리땡’ 사과품종에서 모티브를 얻은 김기용 작가의 <Golden Delicious>도 있다. 평소 금속 업사이클링 작업으로 유명한 성낙중 작가의 작품도 보이고, 김기호 작가의 <끄적끄적 재미지게>는 위트가 돋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동주 작가의 <Cafe terrace 이태원입니다>, 두시영 작가의 <피에타 : 이태원 아리랑>는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승곤 작가의 <똥바다>, 서수경 작가의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는 보다 사회적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꽃잎인지 핏방울인지 모를 천호석 작가의 <피의 꽃>, 송효섭 작가의 <심장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이 전시를 참을 수 없었던 작가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렇듯 세상을 직시하며 마음속 울분과 응어리를 토해내다가 심정수 작가의 <벅수>로 이 풍진 세상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최종 메시지를 완성하는 듯하여 흥미롭다.
회화, 조소, 공예, 설치미술, 각종 오브제의 향연 속에 34인의 작가가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명료하다. 옛날 논밭예술학교가 표방한 자유분방한 예술과 생태의 메시지를 조금도 보태거나 뺄 것 없이 완벽히 표현하며 ‘논밭갤러리 시즌2’의 본격적인 출사표를 멋지게 던진 전시임은 말할 것 없다. 세상을 향한 목소리인 만큼 어떤 이들에게는 거북하거나 불편한 외침으로 들릴 수 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이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고, 지금 이게 우리가 마주한 질문이며, 이 작품들이 그에 대한 예술인의 외침인 것을.
이 사회가 야기한 질문(?)에 대한 민미협 예술인의 해답(!),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 ? and ! > 전시는 2023년 1월 3일까지 휴관일 없이 진행한다. 관람 무료.
12호(2022년 12월) : 한국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 정기전 ? and ! | 논밭갤러리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쓰고, <오늘 같은 날 헤이리>를 공저하였다.)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함
헤이리예술마을을 걷다 보면 꽤 오랫동안 시선을 강탈한 ‘무’가 있었다.
그곳은 예술공간이며 생태공간이자 교육공간이었고, 헤이리에서 가장 특이하고 생동감 넘치는 곳이었다.
그곳은 지금 원래의 위치를 벗어나 ‘시즌 2’를 시작했고, 그 정신을 함축한 전시를 열었다.
논밭예술학교. 이 이름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논밭과 예술은 무슨 관계인가? 이 학교는 농사를 가르치는가, 예술을 가르치는가? 지금 와서 제3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사실 그 구분은 무의미했다. 논밭예술학교는 그저 자연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무언가 ‘작당’하여 생태와 환경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는 종잡을 수 없는 프로젝트를 벌여온 곳이다. 그러면서 우리 먹거리를 이용한 배움의 장도 만들었다. 큰 질서는 있으나 일률적인 정의를 거부하는, 마치 자연과 같은 모습이 그 속에 있었다.
논밭예술학교에는 ‘논갤러리’와 ‘밭갤러리’라는 이름의 전시실이 있었고, 꾸준한 전시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어느샌가 논밭갤러리라고 합쳐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유감스럽게도 논밭예술학교의 자유로운 프로젝트에 마침표를 찍고, 많은 이들이 탄식을 내뱉을 즈음 도보 5분 거리에 새로운 논밭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논밭예술학교에서 전시에 관여한 그 인력이 그 정신을 그대로 살려 새로운 갤러리를 열었다. 시선을 강탈한 ‘무’는 사라졌지만, 그게 뭐 중요한가. 원래의 정신이 살아있는데.
논밭갤러리 재개관 이후 지금까지 “판 아트 페스티벌”의 일환인 <헤이리와 이웃작가전>을 제외하면 두 번의 공식 전시가 있었다. 매번 논밭갤러리의 전시는 평범하지 않았다. 요란한 홍보도 없었다. 그래서 논밭갤러리에 들어서면 일종의 ‘섬’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로지 작품만 날 것 그대로 바라보며 망망대해에 서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 논밭갤러리의 12월, 몹시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새로운 전시가 문을 열었다.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철학으로 똘똘 뭉친 한국민족미술인협회 서울지회(이하 ‘민미협’) 정기전 <조국의 산하전 : ? and ! >. 총 34인의 민미협 작가가 작금의 현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자신의 예술세계로 표현하는 흥미로운 시간이다.
작금의 현실이라니, 솔직히 낭만적이거나 유쾌하지 못하다. 자연은 파괴되고, 1년 내내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으며, 팬데믹으로 인한 상처에 고통받고, 얼마 전에는 가슴 아픈 참사도 겪었다. 슬프고 우울한 소식이 연일 들려오는 지금, 민미협 예술인들이 가진 질문(?)은 무엇이며, 그것에 대한 예술적인 해답(!)은 무엇일까?
넓은 전시 공간을 가득 메운 민미협 작가의 다채로운 작품은 하나같이 재기발랄하고 때로는 직설적이다. 해학이 넘치고 통찰이 돋보인다. 가령, 이철재 작가는 팬데믹 와중에 서민의 숨통을 열어준 재난지원금 카드를 모아 미륵보살을 실크스크린으로 프린트하여 <2020, 이방의 갈릴리인이여>를 만들었다.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며 조류 75% 멸종위기를 경고하는 주재환 작가의 <멸종위기>, 기후 변화로 지금은 자취를 감춘 ‘고리땡’ 사과품종에서 모티브를 얻은 김기용 작가의 <Golden Delicious>도 있다. 평소 금속 업사이클링 작업으로 유명한 성낙중 작가의 작품도 보이고, 김기호 작가의 <끄적끄적 재미지게>는 위트가 돋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동주 작가의 <Cafe terrace 이태원입니다>, 두시영 작가의 <피에타 : 이태원 아리랑>는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승곤 작가의 <똥바다>, 서수경 작가의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는 보다 사회적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꽃잎인지 핏방울인지 모를 천호석 작가의 <피의 꽃>, 송효섭 작가의 <심장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이 전시를 참을 수 없었던 작가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렇듯 세상을 직시하며 마음속 울분과 응어리를 토해내다가 심정수 작가의 <벅수>로 이 풍진 세상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최종 메시지를 완성하는 듯하여 흥미롭다.
회화, 조소, 공예, 설치미술, 각종 오브제의 향연 속에 34인의 작가가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명료하다. 옛날 논밭예술학교가 표방한 자유분방한 예술과 생태의 메시지를 조금도 보태거나 뺄 것 없이 완벽히 표현하며 ‘논밭갤러리 시즌2’의 본격적인 출사표를 멋지게 던진 전시임은 말할 것 없다. 세상을 향한 목소리인 만큼 어떤 이들에게는 거북하거나 불편한 외침으로 들릴 수 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이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고, 지금 이게 우리가 마주한 질문이며, 이 작품들이 그에 대한 예술인의 외침인 것을.
이 사회가 야기한 질문(?)에 대한 민미협 예술인의 해답(!), 날 것 그대로의 싱싱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 ? and ! > 전시는 2023년 1월 3일까지 휴관일 없이 진행한다. 관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