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2022년 3월) : 최영선 작가의 스튜디오 | 갤러리 최영선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출간하였다.)
왜 예술마을인지 알고 싶다면
혹자는 묻는다. 헤이리는 왜 예술마을인가? “예술인이 많이 살아서”라는 답은 100점짜리 정답은 아니다.
100점짜리 정답을 몸소 보여주는 산증인을 꼽으라면 필자는 최영선 화백을 첫 손에 꼽는다.
그녀의 아지트, 갤러리 최영선은 헤이리예술마을의 캐릭터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헤이리의 아이콘이다.
예술인이 산다. 그런 예술인이 마을에 잔뜩 있다면, 특이하기는 하겠으나 별난 매력이라고 할 수는 있을까? 헤이리가 예술마을인 이유는 여기서 한 단계, 아니 두세 단계 더 나아가기 때문이다. 예술인이 산다, 예술인이 자기 공간을 만들고, 자기 작품을 전시하고, 지금도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런 예술인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서로 교류하며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헤이리는 예술마을이다.
다만, 예술인도 사람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초창기 헤이리예술마을에는 자기 공간에서 창작하고 전시하며 일상을 예술로 채우는 별난 예술인이 많았다면, 날이 갈수록 그 수는 점차 줄어든다. 예술인이 이상향을 꿈꾸며 하나둘 모여 마을을 만들었으나 현실의 장벽 앞에 이상을 접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떠하든 여전히 매일 붓을 들고 작품을 만들며, 쉴 새 없이 신작을 만들어 전시하고 관람객과 소통하는 예술인이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최영선. 갤러리 최영선은 그녀가 살며,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전시하는 그녀의 아지트이다. 단순히 그림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일생과 열정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관람객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갤러리 최영선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3개층은 각각 작가의 주거공간, 창작공간, 전시공간으로 오롯이 활용된다. 살면서 창작하고, 창작하며 전시하는, 예술인의 일상이 한 건물에 펼쳐진다. 과거에는 헤이리예술마을에 이런 장소가 많았으나 날이 갈수록 하나둘 줄어드는 현실에서, 갤러리 최영선은 강산이 바뀔 세월 동안 처음의 그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할 수 있다.
우연한 기회에 최영선 화가를 만났다. 그녀가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1970년에 필자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긴 세월 동안 그림만 그렸던 그녀는, 여전히 하루의 절반은 붓을 놓지 않는다. 자그마한 체구가 무색하게 에너지 넘치고 유쾌하며,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작품에 담긴다.
지하의 전시장을 가득 채운 그녀의 작품은 볼 때마다 오묘하다. 수십 년 전 작품부터 올해 탄생한 따끈따끈한 신작까지 전시장을 메우고 있는데, 하나같이 그 표현이 신비롭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러한 그림을 초현실주의라 부른다는데 그녀는 그러한 정의를 거부한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대로 솔직하게 붓을 놀렸을 뿐이며, 지금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이 캔버스에 올라가는 것일 뿐 어떠한 장르나 형식을 생각하며 그린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림 이야기를 할 때에는 소녀처럼 웃으며 수다의 데시벨이 높아지는 화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에 제법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모든 그림 앞에서 최영선 화가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건 뭘 그린 것 같아?” 나 역시 솔직한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러면 방긋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치 처음부터 정답은 없었다는 것처럼, 그저 그림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즐겁다는 것처럼, 그 에너지에 함께 빠져들어 수십 점의 그림을 감상하고 이야기했다.
작가 본인은 초현실주의라는 분류를 거부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분명 추상적이고 입체적이며 개성적이다. 그래서 추리하는 재미가 있고, 나의 감상을 대입하는 재미가 있다. 또 같은 작품도 구경할 때마다 감상이 다르다. 마치 그 날 나의 기분에 따라 작품의 목소리도 다르게 들리는 모양이다.
멋진 작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 멋진 작품을 그린 예술인을 보는 것도 아주 놀라운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인이 사는 곳에서, 예술인이 작품을 만드는 곳에서, 그 예술인과 수다를 떨며 멋진 작품을 구경하고 나의 기분을 대입하여 새로운 느낌을 마주하는 경험은 매우 진귀하다.
헤이리예술마을은 그런 경험을 선사하니까 예술마을이다. 다만, 갈수록 그런 경험이 진귀해지기에 갤러리 최영선은 특별하다. 헤이리가 왜 예술마을인지 알고 싶으면 갤러리 최영선에 가보시라. 거기서 느끼는 감정과 기분, 그것이 헤이리의 진면목이라고. 그래서 갤러리 최영선은 헤이리의 아이콘이다.
3호(2022년 3월) : 최영선 작가의 스튜디오 | 갤러리 최영선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출간하였다.)
왜 예술마을인지 알고 싶다면
혹자는 묻는다. 헤이리는 왜 예술마을인가? “예술인이 많이 살아서”라는 답은 100점짜리 정답은 아니다.
100점짜리 정답을 몸소 보여주는 산증인을 꼽으라면 필자는 최영선 화백을 첫 손에 꼽는다.
그녀의 아지트, 갤러리 최영선은 헤이리예술마을의 캐릭터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헤이리의 아이콘이다.
예술인이 산다. 그런 예술인이 마을에 잔뜩 있다면, 특이하기는 하겠으나 별난 매력이라고 할 수는 있을까? 헤이리가 예술마을인 이유는 여기서 한 단계, 아니 두세 단계 더 나아가기 때문이다. 예술인이 산다, 예술인이 자기 공간을 만들고, 자기 작품을 전시하고, 지금도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런 예술인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서로 교류하며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헤이리는 예술마을이다.
다만, 예술인도 사람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초창기 헤이리예술마을에는 자기 공간에서 창작하고 전시하며 일상을 예술로 채우는 별난 예술인이 많았다면, 날이 갈수록 그 수는 점차 줄어든다. 예술인이 이상향을 꿈꾸며 하나둘 모여 마을을 만들었으나 현실의 장벽 앞에 이상을 접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어떠하든 여전히 매일 붓을 들고 작품을 만들며, 쉴 새 없이 신작을 만들어 전시하고 관람객과 소통하는 예술인이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최영선. 갤러리 최영선은 그녀가 살며,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전시하는 그녀의 아지트이다. 단순히 그림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일생과 열정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관람객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갤러리 최영선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3개층은 각각 작가의 주거공간, 창작공간, 전시공간으로 오롯이 활용된다. 살면서 창작하고, 창작하며 전시하는, 예술인의 일상이 한 건물에 펼쳐진다. 과거에는 헤이리예술마을에 이런 장소가 많았으나 날이 갈수록 하나둘 줄어드는 현실에서, 갤러리 최영선은 강산이 바뀔 세월 동안 처음의 그 모습으로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할 수 있다.
우연한 기회에 최영선 화가를 만났다. 그녀가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1970년에 필자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긴 세월 동안 그림만 그렸던 그녀는, 여전히 하루의 절반은 붓을 놓지 않는다. 자그마한 체구가 무색하게 에너지 넘치고 유쾌하며,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작품에 담긴다.
지하의 전시장을 가득 채운 그녀의 작품은 볼 때마다 오묘하다. 수십 년 전 작품부터 올해 탄생한 따끈따끈한 신작까지 전시장을 메우고 있는데, 하나같이 그 표현이 신비롭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이러한 그림을 초현실주의라 부른다는데 그녀는 그러한 정의를 거부한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대로 솔직하게 붓을 놀렸을 뿐이며, 지금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이 캔버스에 올라가는 것일 뿐 어떠한 장르나 형식을 생각하며 그린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림 이야기를 할 때에는 소녀처럼 웃으며 수다의 데시벨이 높아지는 화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에 제법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모든 그림 앞에서 최영선 화가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건 뭘 그린 것 같아?” 나 역시 솔직한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러면 방긋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치 처음부터 정답은 없었다는 것처럼, 그저 그림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즐겁다는 것처럼, 그 에너지에 함께 빠져들어 수십 점의 그림을 감상하고 이야기했다.
작가 본인은 초현실주의라는 분류를 거부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분명 추상적이고 입체적이며 개성적이다. 그래서 추리하는 재미가 있고, 나의 감상을 대입하는 재미가 있다. 또 같은 작품도 구경할 때마다 감상이 다르다. 마치 그 날 나의 기분에 따라 작품의 목소리도 다르게 들리는 모양이다.
멋진 작품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 멋진 작품을 그린 예술인을 보는 것도 아주 놀라운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인이 사는 곳에서, 예술인이 작품을 만드는 곳에서, 그 예술인과 수다를 떨며 멋진 작품을 구경하고 나의 기분을 대입하여 새로운 느낌을 마주하는 경험은 매우 진귀하다.
헤이리예술마을은 그런 경험을 선사하니까 예술마을이다. 다만, 갈수록 그런 경험이 진귀해지기에 갤러리 최영선은 특별하다. 헤이리가 왜 예술마을인지 알고 싶으면 갤러리 최영선에 가보시라. 거기서 느끼는 감정과 기분, 그것이 헤이리의 진면목이라고. 그래서 갤러리 최영선은 헤이리의 아이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