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헤이리뷰는 "헤이리의 리뷰"라는 뜻으로 매달 헤이리예술마을의 행사나 공간 등을 1~2곳씩 여행작가의 리뷰로 소개해드리는 코너입니다.

[13호] 개근상이라도 드리고 싶어서 (2023.01.)

헤이리예술마을
2023-02-02

13호(2023년 1월) : 2022년 연간 전시 20회 개최 | 갤러리 피랑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쓰고, <오늘 같은 날 헤이리>를 공저하였다.)


개근상이라도 드리고 싶어서

팬데믹으로 다들 어렵다. ‘미술시장 1조 원 시대’라는 말이 들려오지만 작은 갤러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헤이리예술마을의 여러 갤러리는 2022년 내내 치열한 전시 활동을 이어갔으며,

1년 사이 무려 20회의 전시를 진행한 갤러리 피랑은 그 부지런함에 개근상이라도 드리고 싶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동네 산책하며 미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것은 헤이리예술마을에 사는 사람에게 주어진 일종의 특혜라 할 수 있다. 헤이리의 평일은 비교적 조용하다. 그래서 복잡하지 않은 환경에서 온전히 작품을 마주 바라보며 작가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 주말에 일부러 어디를 가지 않아도 내킬 때마다 전시장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소소한 특권이 분명하다.

 

여행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세계적인 명성의 유럽 미술관을 숱하게 다녔지만, ‘동네 갤러리’의 포근한 분위기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그와 또 다른 범주의 색다른 즐거움이다. 그래서 1년 동안 참 많은 전시를 구경했다. 기사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헤이리예술마을에서 열린 크고 작은 미술 전시가 100회 이상이라고 한다.

 

혹자는 헤이리마을에 갤러리가 문을 닫고 상업화된다며 흘겨보지만, 한 마을에서 연간 100회 이상의 전시가 열리는 곳이 우리나라에 또 있을까? 여전히 헤이리마을은 일상 속 가까운 곳에서 예술을 접하기에 독보적인 명소가 틀림없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이 중 최다 전시 개최 장소는 갤러리 피랑이다. 무려 20회의 전시가 열렸으니 한 달에 평균 두 번에 가까운 전시가 쉴 새 없이 진행된 셈이며, 마을 전체의 전시 비율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 말이 쉬워 한 달에 두 번이지 작품을 걸고 내리는 수고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정성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다. 입장료도 받지 않으니 사실상 문화예술에 이바지하는 마음으로 봉사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중 여러 전시가 기억에 남는다. 온갖 꽃이 활짝 핀 빈센트 맥킨도 개인전 <사색>(2022.6.1. ~ 6.15.)은 전시장에서 마침 작가를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다. 굉장히 반듯하고 정갈한 느낌의 정미옥 개인전 <Special Transition I>(2022.6.16. ~ 6.30.)도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

 

민주주 개인전 <Circle>(2022.7.16. ~ 7.31.)과 강동훈 개인전 <물감 뚜껑에 펼친 교향악>(2022.9.3. ~ 9.30.)은 ‘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완전히 다른 예술세계를 펼쳤다. 민주주 작가는 작은 원과 간결한 선으로 미니멀의 매력을 보여주었다면, 강동훈 작가는 물감 뚜껑을 이용하여 원으로 색깔을 찍어 큰 화폭을 가득 채우는 픽셀아트의 매력를 보여주었다. 물론 갤러리에서 의도한 바는 아닐지 모르지만, 한 장소에서 쉴 새 없이 여러 전시가 이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예술세계를 접하고 그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며 감상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경험이 가능하였다. 그런가 하면, 조현영, 남택민, 이기찬 작가 3인의 단체전 <바람의 무게>(2022.10.19. ~ 10.30.), 소품 같은 아기자기한 멋을 선보인 박나은 개인전 <Piece>(2022.12.2. ~ 12.15.)는 신선하고 재기발랄한 표현이 돋보이는 전시로 기억에 남는다.

 

하나의 색깔로 정의되지 않는, 다양한 색채가 펼쳐지는 갤러리 피랑의 매력은 어쩌면 그 이름에서 이미 정의가 되어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갤러리 피랑의 이름은 경남 통영의 동피랑마을에서 유래한다. 낡은 어촌이 벽화의 힘으로 새롭게 태어난 동피랑마을처럼, 갤러리 피랑은 다양한 예술세계가 피어나는 공간을 지향한다고 한다. 갤러리 피랑의 김은희 관장은 통영 출신으로 통영의 자연을 소재로 회화와 도예 작품을 만들어 온 중견 작가. 말하자면, 고향 예술마을의 정신을 국토 반대편 헤이리예술마을에 이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각 전시 기간은 짧게는 2주, 길어도 1개월 미만이다. ‘아차’ 하다가 전시를 놓칠 수 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그러니 틈틈이 전시 정보를 확인하고 방문 일정을 정하자. 물론, 항상 어떠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동네 산책하듯 가볍게 작품 구경하고 돌아가도 좋겠다. 헤이리마을 외부에서 활동하는 김은희 관장이 갤러리를 지키지 않는 시간이 많아 텅 빈 갤러리를 부담 없이 조용히 관람할 수 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가끔 휴관일이 아닌데도 문이 닫힌 날이 있다는 점은 유의할 것.)

 

거창하지 않아도 소소한 예술적 체험이 늘 일상 속에 함께 하는 곳. 헤이리예술마을의 강점을 드러내는 곳으로 갤러리 피랑을 기억해두면 종종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지런한 ‘개근생’은 2023년에도 벌써 두 번째 전시를 준비하여 2월 4일부터 박새로미 등 작가 5인의 <날展 : 다섯 계절>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