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헤이리뷰는 "헤이리의 리뷰"라는 뜻으로 매달 헤이리예술마을의 행사나 공간 등을 1~2곳씩 여행작가의 리뷰로 소개해드리는 코너입니다.

[4호] 참으로 맛있는 여행이다. (2022.04.)

헤이리예술마을
2022-04-28

4호(2022년 4월) : 터키 가정식 레스토랑 | 앤조이터키


"월간 헤이리뷰는 매달 1~2곳의 헤이리 콘텐츠를 리뷰로 소개하는 웹진입니다. 여행작가의 취재 및 원고로 제작되므로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글,사진 : 유상현 (헤이리에 사는 여행작가. <프렌즈 독일> <지금 비엔나> <루터의 길> 등 8권의 유럽여행 서적을 출간하였다.)




참으로 맛있는 여행이다

해외여행길이 막힌 지 어언 2년. 우리 삶의 중요한 활력소가 강제로 사라졌다.

그래도 세상이 좋아져서 사진으로, 영상으로, SNS로, 간접 체험은 가능한 것에 위안을 얻지만 한계가 있다.

직접 보고 먹으며 생생하게 느끼는 여행의 간접 체험을 헤이리예술마을에서 누려보자.


한국인은 먹부림을 사랑한다. 여행 가면 꼭 그 곳의 맛집을 찾는다. 맛만 있어서도 곤란하다. 근사한 사진으로 남아 내 사진첩을 풍성히 채워주어야 한다. 이런 식당이 있다면 일부러 발품을 들여 먼 길을 찾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면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으로 그 추억은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비행기는 타지 않지만, 그와 똑같은 경험과 추억을 선물하는 맛집을 찾았다. 터키 여행의 대리 체험이 가능한 곳, 온전한 터키의 맛과 터키의 풍경으로 채운 곳, 2022년 3월 문을 연 헤이리예술마을의 앤조이터키이다. 사실 앤조이터키는 어림잡아 약 9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헤이리마을에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아담한 레스토랑이었는데, 이참에 건물을 짓고 확장하여 헤이리 중심부에 새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과거 몇 차례 방문할 때마다 늘 빈 자리가 없어서 예약이 필수였는데, 공간이 넓어져도 여전히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운 걸 보면 여행의 대리 체험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게 분명하다.

 

이미 문밖에서부터 터키요리 특유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아기자기하게 꾸민 터키풍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는다. 지중해를 연상케 하는 상쾌한 푸른색 벽에 터키 여행지 동영상이 상영되고, 터키의 악세사리와 수공예품이 작은 갤러리를 이루고, 터키의 문화를 설명하는 약간의 안내문과 글귀 및 그림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터키가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랫동안 터키를 여행하며 터키 문화를 체득한 주인장의 여행노트. 그 날의 감정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느새 터키 어딘가를 여행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SNS에 최적화 된 꾸밈 센스는 덤이다.


아마 터키음식 하면 떠오르는 1순위는 케밥일 것이다. 앤조이터키에서도 물론 케밥을 판다. 그리고 그 외에도 메네멘, 사치타바, 귀베치, 이집션라이스, 카이막 등 생소한 이름이 메뉴판을 가득 채우고, 거기에는 ‘터키식 새우 뚝배기’ ‘터키만두’ ‘터키식 소고기 철판볶음’ 등 직관적인 설명이 귀여운 그림과 함께 적혀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본다. 공예품도 구경하고, 터키 소개 글귀도 읽어보고, 여행책부터 역사책까지 책꽂이에 가득한 터키 관련 서적도 읽어본다. 방문 당시에는 약간 쌀쌀한 날씨였기 때문에 실내에만 머물렀지만 수목 가득 우거진 실외 테라스도 구경하며 사진 찍기 훌륭하다.

 

메네멘과 사치타바를 주문했다. 터키식 가정식 메네멘은 앤조이터키의 베스트 메뉴. 맵기 조절이 가능하여 입맛에 맞게 즐길 수 있다. 앙증맞게 “더 맛있게 메네멘 즐기는 법”이라고 적힌 카드를 함께 주기 때문에 첫 경험이어도 능숙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맛의 결은 흡사 밥과 함께 먹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친숙한 느낌이랄까. 사치타바는 우리가 터키음식을 떠올릴 때 생각할 법한 이국적인 맛이다. 향신료가 느껴지는 밥, 고기와 채소, 그것을 덮은 터키식 난이 철판 위에서 조화를 이룬다. 모든 메뉴는 홍차가 함께 나오는데, 터키에서 공수한 터키식 홍차를 블렌딩하여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하니터키를 향한 진심이 전해진다.


그냥 끝내기 아쉬워 입가심거리로 큐네페를 택했다. 치즈와 튀김과 아이스크림.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계산대 앞에 쌓여있는 터키 사탕을 까먹으며 배를 두드리고 나오며 잠깐이지만 터키를 여행한 기분을 곱씹는다. 터키의 풍경, 터키의 느낌, 터키의 향취, 터키의 음식, 그리고 터키에 대한 진심이 담긴 애정의 성찬.

 

앤조이터키는 사람내음 나는 곳이어서 좋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담한 곳에 있었던 그때나, 넓은 보금자리를 가진 지금이나, 그 분위기가 똑같다. 싹 바뀐 것 같은데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똑같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게 이런 것이리라.

 

해외여행이 끊긴 지 만2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여행을 할 수 없는 삶은 참으로 잔인하다. 그래서 인간은 어떻게든 대리 체험으로라도 여행을 즐겨야 한다. 앤조이터키에서 잠시나마 여행의 욕구를 푼다. 참으로 맛있는 여행이다.